막 싹을 틔운 어린 나무가 생장을 마다하는 이유는 땅 속의 뿌리 때문이다. 작은 잎에서 만들어 낸 소량의 영양분을 자라는 데 쓰지 않고 오직 뿌리를 키우는 데 쓴다. 눈에 보이는 생장보다는 자기 안의 힘을 다지는 데 집중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어떤 고난이 닥쳐도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비축하는 시기, 뿌리에 온 힘을 쏟는 어린 시절을 ‘유형기’라고 한다.
나무는 유형기를 보내는 동안 바깥 세상과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을 벌인다. 따뜻한 햇볕이 아무리 유혹해도, 주변 나무들이 보란 듯이 쑥쑥 자라나도, 결코 하늘을 향해 몸집을 키우지 않는다. 땅속 어딘가에 있을 물길을 찾아 더 깊이 뿌리를 내릴 뿐이다. 그렇게 어두운 땅속에서 길을 트고 자리를 잡는 동안 실타래처럼 가는 뿌리는 튼튼하게 골격을 만들고 웬만한 가뭄은 너끈히 이겨낼 근성을 갖춘다. 나무는 유형기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하늘을 향해 줄기를 뻗기 시작한다. 짧지 않은 시간 뿌리에 힘을 쏟은 덕분에 세찬 바람과 폭우에도 굳건히 버틸 수 있는 성목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세명의 자녀로 선물로 받았다. 7세를 세번째 키우고 있는 중이다. 처음 7세를 키운 해엔 선생님 상담을 하면 입 댈 것이 없다고 잘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두번째 7세를 키울때는 마음따뜻하고 리더쉽이 보였기 때문에 학습적으로는 조금 못미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세번째 키우는 7세는 내눈엔 너무나 멋지다. 검게 그을린 구릿빛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고, 몸에서는 향기가 난다. 자전거도 잘 타고, 교우관계도 원만한 편이다. 누나의 과자는 절대 몰래 먹지 않는다.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절대 하지 않는다. 충치 치료후에 2시간동안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하면 배가 등가죽에 붙어있을 지언정 절대 먹지 않는 아주 정직하고 나름 절제력도 가지고 있고 주관도 있는 아이이다. 막내인데도 불구하고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도 크다. 그런데 선생님의 눈엔 이런것들이 안보인다. 그저 예배시간에 잘 못앉아있고 율동도 안하고, 자기반에서는 이름도 못쓰는 아이이고, 발표도 못하고 소극적인 아이로 비추어진다. 아이가 6세때 장점을 봐주지 못한 선생님을 만나서 안타까웠지만 아이가 자라나는데 있어 다 좋은 선생님만 있는건 아니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7세때도 단점만 보이는 선생님을 만나니 마음이 복잡하다. 처음엔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것 같아서 몇일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문득 나와남편이 아이의 좋은 선생님이 되어 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뿌리를 깊이 내릴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설에서 선생님의 어떤 소리가 들려도 평안함을 유지할수 있었다. 지금 우리 아이는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다. 하늘을 향해 몸집이 커지지 않는다고 모두가 생각해도 어두운 땅속에서 길을 트고 있는 중인것이다. 매일 밤마다 아이안에 있는 실타래 처럼 가는 용기의 뿌리, 정직의 뿌리, 인내의 뿌리를 내려주기 위해 있었던 일을 나누고, 가늘게 보이는 뿌리들이 튼튼해 지도록 말해주고 보듬어준다.
나무는 보통 5년의 유형기를 거친 후에 비로소 하늘을 향해 줄기를 뻗기 시작한다는데 우리 아이는 몇년의 유형기를 거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고난이 와도 살아남을수 있는 튼튼한 뿌리를 내리는 이 시기를 잘 거친 후에 하늘을 향해 줄기를 뻗을수 있도록 믿어주고 보듬어주고 사랑해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생존을 위한 버팀은 한번 싹을 틔운 곳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나무들의 공통된 숙명이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피랗 길이 없고, 사람을 비롯한 다른 생명체의 위협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어떤 재난이 와도 도망칠 재간이 없기에 나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구책을 최대한 동원해 그 시간들을 버텨 내는 것 뿐이다.
그러고 보면 나무의 삶은 결국 버팀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버틴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굴욕적으로 모든 걸 감내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평생 나무를 지켜본 내 생각은 다르다. 나무에게 있어 버틴다는 것은 주어진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 내는 것이고, 어떤 시련에도 결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버팀의 시간 끝에 나무는 온갖 생명을 품는 보금자리로 거듭난다. 그러니 가시투성이의 흉한 모습으로 변하면서까지 버틸 필요가 있느냐고 비아냥대는 것은 옳지 않다. 굴욕적인 겉모습까지 감내하며 끝까지 버티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오히려 칭찬해줘야 마땅하다.
부모가 되어 자녀 셋을 키우면서 부모님에게 가장 감사하는 일이 있다면 버텨주셨던 거다. 우리를 키우면서 숱한 어려움들이 있었겠지만 그 순간들을 꿋꿋이 버텨 주셨었다. 그 분들의 시절에는 버티는 것 외엔 답이 없었으므로 뭘 해줬다 못 해줬다고 판단할수 없는 그분들의 삶을 존경할 수 밖에 없다. 나도 어른이 되고 보니 버텨내야 하는게 일상이 되었다. 남편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버틴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적극적으로 살아내고, 성실하게 살아내면서 내 자신이 온갖 생명을 품는 보금자리로 거듭나는것을 조금씩 느낀다. 나무처럼. 홈스쿨링을 시작한지 4년차가 되어간다. 내면의 갈등들이 있지만 이 시간을들 쌓아간다. 선교사로 살면서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에서도 주어진 일에 성실하게 임하려 노력한다. 댓가도 없고 보람도 없어 보이는 일들이라 할 지라도 이 시간들은 쌓여가고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를 만들어 갈 것이다.